어떤 여행의 기록

라오스 - 31. 비엥싸이(Vieng Xai) 2 본문

해외여행/'08 라오스

라오스 - 31. 비엥싸이(Vieng Xai) 2

돗순이 2015.11.26 14:02

 

 

2008년 6월 ~ 7월 라오스 여행기

 

 

-----

 

 

 

 

 

 

 

겉보기에는 한가롭고, 또 아름다운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할 것 같은 비엥싸이는 사실 깊은 전쟁의 상처를 갖고 있는 곳이다. 현 정부를 수립한 라오스의 공산주의 정치단체인 파탓 라오(Pathet Lao)가 베트남의 호치민을 돕고 있다고 의심한 미국은 베트남전과는 별도로, 파탓 라오가 장악하고 있던 라오스 북동부에 엄청난 폭격을 가했다. 태국에서 폭격기를 띄워, 라오스와 베트남 북부에 폭탄을 쏟아붓고 돌아오는 식이었다.. 항아리평원(plain of jars)이 위치한 폰사반(phonsavan)에 근거를 두었던 파탓 라오는 폭격을 피해 근거지를 이곳, 비엥싸이로 옮겨 끝까지 미국에 저항했다. 비엥싸이는 교통이 불편하고 외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카르스트가 둘러싼 천혜의 자연조건 때문에 방어에 용이했기 때문이다.

 


폭격이 가해진 9년동안, 라오스에 쏟아진 폭탄의 양은 무려 2백만 톤이 넘는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 전체에 떨어진 폭탄의 양보다도 더 많으며, 폭탄을 가득 실은 폭격기가 8분에 한번씩, 9년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폭탄을 쏟아부어야지만이 가능한 수치이다. 이로 인해 미국이 감수한 전쟁비용은 총 72억 달러로, 하루에 200만달러씩 쓴 셈이다. 정확한 수치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폭격으로 집을 잃은 라오스 국민의 수는 7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베트남전에 가려 공개되지 않고 있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밝혀졌다.


 
 

 

 


폭탄의 잔해로 추측되는 저런 금속 파편들이 온 동네에 아직도 널려있다. 마을 근처에는 아마도 그때 쓰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비행기 활주로가 남아있다. 비엥싸이부터 폰사반에 이르기까지, 곳곳에는 그때 떨어진 폭탄 구덩이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어 그때의 상처를 증언해주며, 불발탄(UXO)를 제거하는 작업이 아직도 진행중이다. 전쟁은 오래 전 끝났지만, 그 후유증은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카르스트 지형의 특성상, 비엥싸이와 그 주변에는 수많은 동굴들이 있다. 파탓 라오는 이러한 지형적 이점을 십분 이용해, 동굴을 지휘본부, 병사들의 막사, 주민들의 피난처 등으로 적극 활용했다. 동굴들은 회의실, 군무원 사무실, 침실 등으로도 사용되었고, 또한 일부는 병원, 시장, 빵집, 사원 등으로 그 기능이 구분되어 있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미국의 폭탄세례를 견뎌 낸 파탓 라오는 이후 정권을 잡고 사회주의공화국을 설립해 현재에 이르렀다. 자신들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라오스 정부는 비엥싸이를 "국가 마을"로 지정했고, 최근엔 동굴의 일부를 관광객들에게 개방하는 등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이 마을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에게 공개된 동굴에는 전쟁 당시 파탓 라오를 이끌고, 이후 국가 수장이 된 사람들의 이름을 붙여 그들을 기념하였다.
 

 

 

 

 

 
동굴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마을에 있는 동굴투어 사무실에서 반드시 미리 신청을 해야 한다. 가이드 동반은 의무적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절대 동굴을 볼 수 없다(가이드가 열쇠를 들고 다니며 동굴 문을 따주고 전기불을 켜준다;) 동굴 6개를 둘러보는데는 반나절 정도가 걸리고, 드는 비용은 3만킵 정도이다. 사진촬영을 위해서는 약간의 비용을 더 내야하며, 투어는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한번씩 있다.
 

 

 
 

 

 

 

 

 

 
절대 눈에 띄지 않도록 대부분의 동굴 입구는 은밀하게 감춰져 있다.
 

 

 

 

 


큰 동굴을 개조해 만든 연단. 가이드 말로는, 무려 쿠바에서 날아온 위문공연단이 이곳에서 공연을 했다 한다.

 

 


 
 

 


대공포가 자리잡고 있었던 곳. 태국에서 날아온 미국의 폭격기가 보이면 동굴 전체에 사이렌이 올리고, 숨어있던 저격수가 올라와 이곳에서 총격을 가했다. 그리고 실제로 몇대의 폭격기를 격추시켰다고 한다.
 

 

 

 

 

 

 

 

 

 

 


동굴 내부의 모습. 규모가 큰 동굴은 그대로 썼지만, 대부분은 조금씩 더 파고, 개조하고 넓혔다.

 

 

 

 

 

 


사령관의 집무실이 이렇게 동굴 밖에 지어진 경우도 있는데, 이는 모두 폭격이 어느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든 1970년대 이후에 지어진 것들이다. 폭격이 한창이었을 땐 감히 밖으로 나올 생각을 못했을거다.

 

 

 

 


 
프랑스에서 건축을 공부하기도 한, 한 세련된 간부는 폭탄이 떨어진 구덩이를 저렇게 수영장으로 개조했다.

 

 

 

 

 

 

 

 

 

 


 

대부분의 동굴 내부는 저렇게, 다양한 용도로 구분이 되어 있다. 간부의 침실, 회의실, 취사장, 병사들의 숙소, 병원, 긴급대피소 등 폭격 속에서도 동굴 속에서 생활하고 전쟁을 지휘하는데 문제가 없게 만들어 놨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바로 이 장치이다. 미국의 화생방 공격에 대비해 특별히 만든 방에 설치되어 있는데, 말하자면 일종의 공기 생산장치이다. 완전히 밀폐시킨 방에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기계로,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아직까지 작동이 된다고 말하며, 그러나 낑낑거리며 기계 작동법을 시연해 보였다. 러시아에서 들여왔다고 하는데, 실제로 미국의 화생방 공격은 없었기 때문에 이 기계가 작동한 적은 없었단다.


 

 

 


라오스에서는 드물게, 마을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이 바로 현 라오스 정권이 탄생한 곳이고, 이들의 저항정신이 남아있는, 국가적인 성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일거다.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잘 물려주고, 또한 라오스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알리기 위한 라오스 정부의 노력이 느껴진다.

 

 

 

 

 

 


비엥싸이 관광을 마치고, 삼느아(Sam Neua)로 나와 하룻밤을 머물렀다. 다음날, 삼느아를 떠나기 직전 버스터미널에서 찍은 삼느아 시내와 주변 정경. 깊은 산 속에 폭 파묻힌 조그마한 삼느아 시의 아름다운 모습, 그리고 비엥싸이의 아름다운 풍경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다음에 다시 라오스를 찾아온다면, 비록 가는 길이 고생스럽다고 해도, 반드시 다시한번 찾아가게 될 매력적인 곳이다.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