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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 1. 프놈펜 뚜얼슬랭 학살박물관(Tuol Sleng Genocide Museum) 본문

해외여행/'08 캄보디아

캄보디아 - 1. 프놈펜 뚜얼슬랭 학살박물관(Tuol Sleng Genocide Museum)

돗순이 2015.11.13 02:04

 

 

208년 6월 캄보디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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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얼슬랭 학살박물관(Tuol Sleng Genocide Museum)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크메르 루즈(Khmer Rouge)를 먼저 알아야 한다. 1950년 처음 등장한 캄보디아의 공산주의단체 크메르 루즈는 1975417, 프놈펜을 점령하고 정권을 잡는데 성공한다.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였던 폴 포트(Pol Pot)는 외세의 지원을 거절하는 강력한 쇄국정책과 공산주의 정책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공장과 학교, 병원은 폐쇄되었고 모든 종교활동은 금지되었으며, 도시에서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은 집단농장에 수용되었다. 농업생산력은 급감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나갔다. 하지만 베트남과 국경분쟁을 벌이다 전쟁이 일어났고, 197917일 베트남군이 프놈펜을 점령하면서 폴 포트의 집권은 막을 내리게 된다.

 

4년여에 이르는 짧은 집권기간 동안 폴 포트가 저지른 가장 추악한 범죄는 바로 집단학살이었다. 킬링필드(Killing Field)로 대표되는 이 집단학살의 희생자 수는 너무 많고, 또 무자비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폴 포트 당사자는 80만명이라 밝히고 있는 반면, 200만명이라고 주장하는 역사가도 있다. 지금도 킬링필드에서는 그때 죽은 사람들의 유골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원래 고등학교였던 이곳은 19758월 크메르 루즈 정권에 의해 "악질분자"들을 가둬놓고 고문하는 S-21이라는 감옥으로, 그리고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생지옥으로, 죽음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으로 재탄생했다.

 

 

 

잔혹한 고문과 극심한 공포에 질린 수감자들이 자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난간에는 철조망을 쳐 놓았다.

 

 

 

 

 

학생들이 공부하던 교실은 신속히 감옥으로 개조되었다. 벽돌로 대충 담만 둘러놓은 쉬운 과정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베트남인이라는 이유로,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심지어는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크메르 루즈 정권은 공부를 해 눈이 나빠져 안경을 쓰게 되었다는 논리를 들이댔다고 한다) 이곳에 수감되었다. 1975년부터 5년간, 이곳을 거쳐간 사람의 수가 무려 2만명에 이른다.

 

 

 

한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비좁은 공간.

 

 

 

 

 

아직도 남아있는 쇠사슬이 그때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몇몇 교실은 정치범을 수용하는 독방이자, 고문이 자행되는 고문실로 이용되었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이곳에 수감된 죄없는 사람들의 모습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전통적인 물고문은 물론이고, 손톱뽑기, 칼로 손가락 자르기, 인두로 지지기, 전기충격 등 상상만해도 끔찍한 고문들도 자행됐다. 일상적인 매질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곳을 거쳐간 2만여명 중, 알려진 생존자는 겨우 12명이다. 잔혹한 고문을 거친 뒤, 수감자들은 프놈펜 근처 킬링필드 등지에서 살해되 매장되었다.

 

 

 

 

 

 

 

 

실제 해골들보다 더 섬뜩했던 전시물은, 건물 한 층을 가득 매우고 있는 수감자들의 사진이었다. 모든 수감자들의 관리파일을 만들어 보관해 왔기 때문에, 상당수가 파기된 뒤에도 이렇게 많은 사진들이 남아있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갇히고, 끔찍한 고문을 받고 죽어나간 사람들의 사진.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의 표정엔 두려움보다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억울함을 부르짖는 절규가 느껴졌다. 불과 30년 전 벌어진 일, 이들의 사진은 마치 어제 찍은 것처럼 생생했다. 사진속에서 튀어나와, 금방이라도 자신의 억울함과 비참함을 털어놓을 것만 같았다.

 

 

 

뚜얼슬랭의 사진을 다시 보는 것은 석달만이다. 그때 받았던 충격이 다시 떠올라,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있을수도 없는,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 내가 태어나기 10년도 채 되기 전에 벌어졌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감출 수 없는 그 역사의 현장은 이제 앙코르와트와 함께 캄보디아의 주요 관광명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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