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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배낭여행기 - 23.5 청두에서 리장가는 길

돗순이 2015.12.04 22:51

 

 

2011년 1월 중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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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청두 - 쿤밍 - 다리 - 리장 - 쿤밍컴백 - 인도 순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청두에 와서 알아보니, 청두에서 리장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단다. 쿤밍에서 리장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내려오는 일정상의 손해와 수고로움을 덜고, 청두 - 리장 - 다리 - 쿤밍 순으로 갈 수 있었다. 당연한 선택이었다.


 
"리장으로 바로 간다고? 21시간이나 걸리는데?" 라고,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야오야오가 말했지만, 하루 정도야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이미 베이징에서 청두까지 26시간동안 기차 안에서 보낸 경험도 있으니깐. 옌타이에서 베이징으로 오는 야간버스도 한 번 타 봤으니깐.


 
그렇게, 1월 19일 오전 11시, 리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때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이 버스를 타게 될지 말이다.
 
 

 



내가 청두에 머무는 동안 맑은 날이 하루도 없었고, 기온도 꽤 낮았다. 심지어 이날 아침에는 눈도 내렸다. 하지만 많이 쌓일 정도는 아니었고, 또 버스가 출발할 때 즈음엔 그쳤다. 버스는 침대버스. 좁긴 했지만, 뭐 지낼 만 했다. 물이랑, 과자 몇 개랑, 귤도 좀 사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버스에 올랐다. 내 뒷자리에 금발머리 외국 여자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있었을 뿐, 나머지는 다 중국인으로 보였다.
 

 

 

 


고맙게도, 영어자막이 박힌 중국영화(영화제목은 정확히 생각이 안 난다. Spring이 들어갔던 거 같은데;;)를 틀어줘서, 지겹지 않게 몇 시간을 보냈다. 액션이나 코메디라면 더 좋았을텐데 그건 아니었고; 거짓말을 주제로, 팍팍한 도시사람들의 일상과 무미건조한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것 같은, 아마도 버스 밖에서 알았다면 기꺼이 앉아 보기 참 힘든 류의 영화였다. 그래도 버스 안에서 보니 재밌었다.


 
영화를 집중해서(!!) 다 보고, 음악을 들으며 좀 자고 일어나 보니, 버스가 기어가고 있었다. 청두에는 눈이 좀 내리다 만 정도였지만, 청두를 벗어난 산간지방에는 눈이 제법 많이 내렸던 것. 불길한 징조였다. 영동고속도로가 없던 먼 옛날, 체인 없이 대관령을 기어올라가는 고속버스와 같았다고 말한다면, 가장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휴게소에 들렀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류의 휴게소가 아니다; 가정집같은 곳에 밥과 몇 가지 밑반찬을 만들어 놓고 파는 곳이다. 입맛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아마도 음식을 먹기 좀 힘들 것 같은데, 나는 뭐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고기와 야채를 버무려 만든 반찬이나, 무와 알 수 없는 고기를 뭉텅이로 썰어 넣은 국이나, 밥때 먹는 밥은 뭐든 다 맛있다.

 

 

 

 


그렇게 달려갔다. 창 밖에 어둠이 깔리니 밖을 보는 재미도 없어져 더 심심했다. 그러다 조명이 화려하게 켜진 어느 도시(?)를 지나가는 것 같더만,  밤 11시에 갑자기 버스가 멈춰섰다. 휴게소는 한 시간 전에 다녀왔는데, 또 휴게소를 가나 생각했다. 험상궂게 생긴 대머리 기사아저씨가 버스에서 내려서 어디 다녀오더니만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보고 막 내리라는 거다;; 중국어를 전혀 알지 못하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뭘 어째, 잠바를 입고 신발을 신고 주섬주섬 내렸다. 버스에 탄 모든 승객들이 경찰서로 몰려가길래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다. 사무실에서는 사람들과 경찰들이 입씨름을 하는 중이었다.


 
물론 뭐가 문제인지는 전혀 몰랐다. 말이 안 통하니,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때마침 옆에, 내 뒷자리에 앉았던 금발머리 외국 여자가 있길래 말을 붙였다.


 
"왜 그런지 알겠어요?"
"아니요. 전혀 모르겠어요."
"흠, 일단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봐야겠는데요?"
"당신이 영어를 할 줄 알잖아요"
"아. 근데 문제는, 저는 중국어를 모른다는거죠"
"중국 사람 아니었어요?"


 
그녀, 카티야는 나를 중국사람으로 알고 있었던거다;;


 
다행히도 영어를 좀 할 줄 아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그 여자는 우리에게, 눈 때문에 길이 너무 미끄러워 경찰이 길을 막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곳에서 하루밤을 잔 다음, 내일 해가 뜨면 출발하라고 권하는 상황이었고, 운전사와 승객들은 안된다고 버티는 상황인 것이다. 웃긴 건, 중국 사람들이 카티야를 앞세워 경찰들에게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100% 외국인, 거기에 여자인 카티야가 나서서 급하다는 상황을 설명하면 경찰이 봐줄 줄 알았나 보다(한 중국인은 카티야에게 "경찰 앞에 가서 배를 내밀어라"라는 자세를 취해 보였다). 물론 택도 없었다;; 그렇게 전혀 예상치 못한 곳, 버스 안에서 하룻밤을 잤다. 좋게 생각하자면, 좀 좁긴 하지만, 그래도 안 흔들리고 편안하게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7시, 벼락같이 버스가 출발했다. 생각보다 길 상태는 좋았다. 경찰이 궂이 막아설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한 고개를 또 넘어가니, 길가에 노랗게 핀 꽃이 보였다. 정말로 오랫만에 해도 보았고, 바람마저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중국은 참 넓은 나라다. 불과 하루만에 겨울과 봄을 다 경험했다.


 
버스는 줄구장창 달렸다. 판쯔화를 지나, 제법 큰 고속도로를 달리다 어느샌가 또 작은 샛길과 꼬불거리는 산길을 달렸다. 또다시 어둠이 내렸다. 바깥풍경을 분간할 수 있던 마지막 순간 언뜻, "리장"이라는 적힌 표지판을 보지 않았다면, 도대체 언제 도착할 지 몰라 답답했을거다.
 


리장에 도착한 건 밤 11시였다. 전날 오전 11시에 출발했으니, 무려 36시간이나 걸렸다;; 아마도 당분간은 깨지기 힘든 최장시간 버스타기 신기록이 세워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신기록 수립의 순간, 함께 한 카티야와는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었고, 이후 호도협도 같이 갔다. 여행 중 만난 또 하나의 소중한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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